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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선교장(江陵船橋莊)
 선교장은 조선말기의 전형적인 사대부의 저택이다. 전주사람인 이내번이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지은 집으로 ‘선교장(船橋莊)’이라는 이름도 집터가 뱃머리를 연상케 한다고 하여 붙였다고 한다.

행랑채의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주옥(主屋)인 안채와 사랑채인 열화당을 비롯하여 동별당 등 민가의 시설을 고루 갖추고 있고 행랑채의 바깥마당에는 넓은 방지와 활래정이라는 정자가 있어 조선후기의 주거생활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안채
안채는 1700년 이전에 건립된 고옥으로 현소유주의 7대손이며 효령대군의 10대손인 이내번이 이곳으로 이사하여 현 선교장의 기틀을 닦았다. 안채는 선교장 건물 중 가장 서민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며, 안방과 건너방이 대청마루를 사이에 두고 동·서로 배치되어 있고, 넓은 부엌이 안방에 붙어 있다.
""열화당(悅話堂)
열화당은 주인 전용의 사랑채로서 이내번의 손자 후가 순조 15년(1815)에 건립되었다. 열화의 당호(堂號)는 도연명의 귀거래사중 “열친척지정화(悅親戚之情話)”의 구절에서 유래한 것이라 전한다. 열화당은 3단의 장대석 단층 기단위에 세워진 정면4칸, 측면2칸의 ㄱ자형 건물로 동편 1칸은 중층을 두어 누각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정면 2칸과 서측면에 걸쳐 툇마루와 난간을 돌렸다. 건물의 내부는 마루를 깔았으며 대청과 누마루 사이에 ㄴ자형으로 된 온돌방을 만들고 그 안에는 장지문을 두어 방을 셋으로 나눌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동별당(東別堂)
동별당은 안채와 연결된 주인전용의 별당건물이다. 1920년에 지은 ㄱ자형으로 대청을 사이로 동쪽에 2개 서쪽에 한개의 온돌방을 만들고 앞면에는 넓은 툇마루와 뒷면과 동면에는 좁은 툇마루를 돌렸다.
""활래정(活來亭)
활래정은 선교장 측면 정원에 만들어 놓은 연지에 세운 정자로 1816년(순조 16) 이근우가 세웠다고 한다. 정자명은 주자의 시 「관서유감」 중 “ 위유원두활수래(爲有源頭活水來)”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이 건물은 마루가 연못안으로 들어가 돌기둥으로 받친 누각형식의 ‘ㄱ자형’ 건물이다. 내부는 장지문을 지르면 두개가 되는 온돌방이 그 한쪽이고 다른 한쪽은 대청이다. 외부는 벽면의 전부가 2-4분합문의 띠살문으로 되어 있으며 방과 마루를 연결하는 복도옆에는 접객용 다실이 있다.
""기타
안채와 열화당 사이에 서재 겸 서고로 사용하던 서별당이 있는데 소실되었다가 1996년에 다시 복원하였으며, 건물의 전면에는 행랑채가 있다. 또한 건물의 측면에는 원래 창고였으나 개화기 때 신학문을 가르치던 동진학교(東進學校)터가 있다.
전체적으로 이 집은 낮은 산기슭을 배경으로 독립된 건물들을 적당히 배치하고 각 건물의 구조도 소박하게 처리함으로써, 집 밖의 활래정(活來亭)과 함께 자유스럽고 너그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또한 소장하고 있는 여러 살림살이들은 옛날 강릉지방 사람들의 생활관습을 알아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해운정
 해운정은 조선 상류주택의 별당건축으로 경포호가 멀리 바라다 보이는 곳에 있으며, 中宗 25년(1530)어촌(漁村) 심언광(沈彦光)이 강원도 관찰사로 있을 때 지었다고 전해진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지붕으로 3단으로 쌓은 축대 위에 남향을 하고 세웠으며 내부는 우측 두 칸은 대청마루로 하고 나머지 좌측 한 칸은 온돌방으로 꾸몄다. 대청 앞면에는 각각 사분합(四分閤)의 띠살문을 달아 전면 전체를 개방할 수 있도록 하였고 측면과 후면은 벽을 쳐서 두짝 판문(板門)을 달았으며 주위에는 쪽마루를 돌렸으며 대청의..
경포해변
소재지 : 강릉시 안현동 산1, 강문동 산1 문의처 : 관광과 033-640-5129,5428 ,관광사업추진단 033-640-5904 면적 : 144,000㎡ 욕장길이(km) : 1.8km 폭(m) : 80m 입장료 : 무료 개장시간 : 매년 7 ~ 8월중 06:00 ~ 24:00 주차시설 : 1천대를 주차할 수 있는 25,000㎡의 주차장  해안 최대 해변으로 유명하며 시내에서 북으로 6km, 경포대에서 1km되는 곳에 동해의 창파를 가득 담고 펼쳐진 명사오리(明沙五里) 이다.모두들 삼키기라도 하려는 듯 밀려..
강릉선교장(江陵船橋莊)
 선교장은 조선말기의 전형적인 사대부의 저택이다. 전주사람인 이내번이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지은 집으로 ‘선교장(船橋莊)’이라는 이름도 집터가 뱃머리를 연상케 한다고 하여 붙였다고 한다. 행랑채의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주옥(主屋)인 안채와 사랑채인 열화당을 비롯하여 동별당 등 민가의 시설을 고루 갖추고 있고 행랑채의 바깥마당에는 넓은 방지와 활래정이라는 정자가 있어 조선후기의 주거생활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안채 안채는 1700년 이전에 건립된 고옥으로 현..
오죽헌
 1536년(중종31년)율곡 이이선생이 탄생한 곳으로 조선시대 상류주택의 별당 사랑채로 우리나라 주거 건축 중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이다.율곡이 태어난 오죽헌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지붕의 건축물이다. 세종조(世宗朝)당시 공조참판과 예문관 제학의 벼슬에 오른 강릉 12향현 중의 한 분인 최치운에 의해 건립된 조선시대 양반가옥의 별당 사랑채로 사용되었던 곳으로 처음 오죽헌이 지어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600여년 전이다.        오죽헌을 정면서 보면 왼쪽 2칸은 대청으로 사용하..
경포호
 경포호는 경포대를 중심으로 호반에 산재한 역사적 누정(경포대, 해운정, 경호정, 금란정, 방해정, 호해정, 석란정, 창랑정, 취영정, 상영정)과 경포해변 및 주변에 울창한 송림지대를 일괄하여 일컫는다.옛날에는 둘레가 12km나 됐다고 하나 지금은 4km 정도이다."수면이 거울과 같이 청정하다"해서 경포라 하였다.일명 군자호(君子湖)라고 전하는 것은 인간에게 유익함을 주는 데에서 붙여졌다.호수에는 잉어, 붕어, 가물치, 새우, 뱀장어 등 각종 담수어가 서식하고 각종 철새들의 도래지이다.그리고 부새우가 많이 잡혀 봄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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